인보사 기사회생 시킨 美 임상 재개 '숨은 공로자'... 김선진 플랫바이오 회장

조선비즈 | 전효진 기자


입력 2020.07.17 06:00 | 수정 2020.07.17 09:49


세계 1위 암 병원 MD앤더슨 19년 임상 이행 전문가

FDA 승인 받은 항암신약 12종 직접 임상설계 참여

"인보사는 실패 아닌 실수… 韓 임상 인프라 구축하겠다"

자체 3~4개 항암제 후보물질 확보… 오픈이노베이션 중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5월 골관절염 세포유전자치료제 인보사의 미국 임상 3상(환자투약) 보류를 결정했다. 당시 FDA는 이를 개발한 코오롱티슈진에 인보사 구성 성분에 대한 특성 분석, 성분 변화 발생 경위, 향후 조치사항 등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품목허가를 취소하는 등 인보사 사태로 비화됐다. K-바이오의 대표주자가 넘을 수 없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 빠졌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하지만 FDA는 11개월 만인 올해 4월 미국 임상 3상에 대한 보류를 해제, 3상 시험을 재개토록 했다.


롤러코스터를 탄 인보사의 기사회생 스토리엔 숨은 공로자가 있다. 국내 임상이행연구(Clinical translational research)와 동소이식모델(Orthotopic model) 분야의 전이암 연구 등 개발임상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김선진(59·사진) 플랫바이오(PLATBIO) 회장이다.


임상이행연구란, 다른 회사의 신약후보물질을 위탁받아 개발 과정 컨설팅과 맞춤형 임상시험 계획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험실 단계부터 물질의 특성을 파악해 임상시험 성공과 상용화의 가능성을 크게 높이도록 임상디자인을 짠다.


실제 FDA의 승인을 받아 상용화에 이른 신약 가운데 임상단계에서 실패했다가 다시 임상 설계를 해 부활하거나 다른 질환 치료제나 백신 용도로 승인받은 신약이 30%에 이르는 현실은 임상이행 연구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후보물질 자체의 효과도 중요하지만 임상의 수준이 신약 개발 성공의 관건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김 회장이 임상이행 연구의 권위자가 된 배경엔 미국 텍사스대학 MD앤더슨 암센터가 있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가 세계 1위 암병원으로 꼽는 곳이다. 1999년부터 약 19년간 이 곳의 교수로 재직하며 100여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가 설계한 임상을 거쳐 탄생한 항암 신약만 해도 12종에 이른다.



김선진 플랫바이오 회장은 임상 쪽집게 박사로 통한다. 임상에 실패한 신약 후보물질의 임상을 다시 설계해 성공시킨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플랫바이오


김 회장이 국내로 눈을 돌린 건 K-바이오가 급부상하는 과정에서 겪는 좌절을 현장에서 봤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을 때 K-바이오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조 단위의 기술 수출이 이뤄진 뒤 2015년 첫 반환이 이뤄지고, 국내 기업들이 큰 고통을 맞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국에 들어와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고 싶었습니다."


국내에 들어와 한미약품 R&D(연구개발) 총괄 부사장을 맡은 지 1년 6개월만인 2018년 10월 그는 바이오벤처 플랫바이오를 세웠다.


김 회장은 "신약개발의 성공은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뛰는 사람이 아니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했다. "신약개발 성공의 열쇠는 (실현 불가능한) 로또 1등을 노리는 게 아니라 실패 확률을 줄이고 당첨 가능성이 높은 5등을 목표로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전임상 단계나 1상에서 기술 수출 논의가 시작되는데 해외의 대형 제약사들 입장에서 한국 기업의 이소이식 모델(xenograft model)을 이용한 데이터를 보는 순간 신뢰도가 떨어지고 이는 물질에 대한 가치 저하와 검증이 완성되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실질적인 부가가치가 인정되는 계약조건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소이식 모델은 신약후보물질을 암이 실제 발현된 곳과 다른 부위(주사하기 편리한 부위)에 주입하는 것이고, 동소이식 모델은 암 발현된 곳에 넣어 효과를 측정한다. 전자의 난이도가 훨씬 낮지만 신뢰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김 회장은 "내실 있고 유의미한 데이터 패키지를 활용한 동소이식 모델을 활용하는 것은 물질의 가치를 더 높게 인정받고 임상 성공 단계로 한발자국 더 가까워지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K-바이오 위기설까지 낳은 신라젠 헬릭스미스 등 바이오업체들의 잇단 임상 실패에다 올들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사태 이후 백신과 치료제 개발 경쟁이 불붙으면서 임상 성공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제대로 된 임상 인프라 구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배경이다.


다음은 김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ㅡ미국 생활을 접고 국내에서 최초로 임상이행연구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 MD앤더슨에서 워낙 많은 수의 항암제 전/임상을 진행했고, 특히 항암제의 이름이 생기기 전 코드명으로 불리우는 초기부터 신약개발 상용화 전과정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많은 항암제들이 실패하는 과정도 있었지만 오히려 실패하는 물질들을 지켜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신약 물질의 효능에는 문제가 없는데 사용법, 즉 적응증을 잘못 선택했거나 올바른 용법을 적용하지 않아서 임상에 실패한 경우 동소이식모델을 활용해 올바른 길을 걷게 해줬습니다. 이를 신약개발 ‘리포지셔닝(Repositioning)’이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국내엔 동소이식모델 전문가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습니다. ‘K-바이오’로 날개를 펴고 있는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회사들에게 꼭 필요한 모델이어서 관련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한발 늦게 가더라도 내실있는 데이터 패키지를 만들어서 물질 신뢰도를 높이는 전략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기술 수출은 많이 했지만 이 가운데 최종 성공한 것은 아직 없는데, 성공률을 높이고 물질에 대한 신뢰, 데이터의 퀄리티를 높여주면 계약단계에서의 계약금의 액수도 많이 올릴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성공스토리가 쓰여지면 ‘K-바이오’의 위상은 지금보다 몇 단계 더 올라갈 겁니다."


ㅡ ‘리포지셔닝’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가요?


"신약 개발 시간이 획기적으로 절약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의뢰 들어온 물질들만 봐도 임상 3상에서 실패한 물질들이 아주 초기에 실패한 비율보다 많습니다. 3상 실패물질은 다른 용법이나 다른 적응증으로 가더라도 약물 독성 테스트인 1상이나 2상 과정을 생략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이 단축됩니다. 기존에 신약물질 발굴이 10여년 걸린다고 예상하면 리포지셔닝의 방법으로 3~5년 사이에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전임상데이터가 정말 중요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전임상 데이터가 임상에서 재현되는 확률을 높이는 노력이 핵심입니다. 동물실험은 동물실험일뿐 임상은 가봐야한다고 하는데, 결정적인 이유는 유효하지 않은 동물실험 모델을 쓰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대장암 표적치료제를 만든다고 가정했을 때 전임상의 경우 생쥐의 피하(옆구리)에 투입하는데, 실제 임상에서 보면 피부 밑에서 자라는 대장암은 없습니다. 플랫바이오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는 같은 장소에 이식하는 동소이식모델을 활용하고 있으며 실제 상황에서도 유효한 결과물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췌장암에서 간이나 다른 장기 뼈나 뇌로 전이됐을 때 어떤식으로 특성을 나타냈는지 등 전이암 관련 모든 종류의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선진(왼쪽에서 세번째) 플랫바이오 회장이 암전이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미국 MD앤더슨의 이사야 피들러(Isaiah J. Fidler) 박사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플랫바이오 제공


ㅡ임상이행연구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동물에게 적용하는)전임상 연구는 단순히 물질의 독성과 효능 등을 테스트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임상 단계부터 임상중개연구의 개념을 도입해, 실제 임상 디자인, 임상시험 진입과 성공을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를 파악하는 과정입니다. 임상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전임상 동물시험 단계부터 적응증, 바이오마커의 확보, 환자군의 조건, 다른 치료법에 대한 반응 및 치료시기, 용법 등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확보합니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임상 프로토콜 강화(protocol enrichment)를 목표로 하는 게 임상이행연구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임상이행연구를 통해 비임상시험을 설계·수행하고, 결과를 분석해 결론을 내린 뒤, 임상시험 디자인의 근간을 만드는 작업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병리생리학적인 기전에서 패턴과 치료표적의 '최대공약수'를 구하는 과정입니다. 이후 최대한 효능을 보이는 범주에 포함시켜 최소한의 독성을 나타낼 것으로 기대되는 치료법을 찾아내는 것이 '최소공배수'를 구하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치료대상인 인체의 다양성(diversity)과 이질성(heterogeneity) 때문에 축적된 자료나 지식뿐 아니라 경험에 바탕한 판단과 결정이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ㅡ인보사가 미국에서 재임상 허가 받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관련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신념으로 이룬 결과입니다. 인보사 사례는 실패가 아니고 실수입니다. 나 역시 처음 경험한 사례였지만 실패와 실수는 명확히 구분해줬음 좋겠습니다. 허가 과정에서 착오가 생긴건데 그래도 물질 자체가 과학적, 의학적으로 효능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미국 FDA는 서로 교신할 수 있는 여러 제도가 있었고 당국 입장에서 의문점이 드는 것이나 회사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여러차례 공식적인 서면미팅을 통해 서로 이해시키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성공적으로 재개 허가가 나왔고, 회사 입장에서도 한번 패배를 맛본거니 프로토콜과 임상조건의 최적화를 했습니다. 연내에 환자에게 재투여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ㅡ플랫바이오가 현재 집중하고 있는 사업과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자체물질로 신약 개발을 하는 것과 더불어 타사의 신약개발 실패 사례를 리포지셔닝으로 다시 살려주는 ‘부활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또 전임상단계의 신약개발 성공확률을 높여주는 것과 초기단계 기술수출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 계약금이나 계약규모를 키워주는 서비스도 하고 있습니다. 플랫바이오는 탄생부터 특이하게 전례 없던 전략적 협업을 선택해 구성원들도 모두 최대 20년 경력의 A급 연구원들입니다.


‘K-바이오’가 잘하고는 있지만, 똑같은 사이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이오회사가 설립되고 신약개발 목표로 뛰고 실제 결과물이 나오기 전에 상장하거나 엑시트하는데, 막상 결과물이 나오기 전에 회사의 가치 떨어지고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이 손해보는 사이클을 깨고 싶습니다. 실체가 있는 회사로 가치를 인정받고 싶습니다. 독자적 협업을 통해서 신약개발 R&D 능력을 확장시킬 것이고, 같은 바이오 회사들에게도 도움되는 비즈니스를 할 예정입니다. 글로벌 임상시험 데이터 전문업체 메디데이터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빅데이터를 이용한 신약개발에도 집중할 예정입니다."


-신약 개발 현황은 어떻나요.


"자체 확보한 신약 후보물질이 췌장암 치료물질 등 3~4개 정도 됩니다. 모두 항암제 입니다. 최근 여러가지 제휴와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서 새로운 후보신약물질을 매년 다수 지속적으로 확보할 체제가 준비되어 가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전문인재 양성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미국에 있을 때 미국 국립암센터에서 동소이식모델을 수립할수있는 모델 과학자 양성 프로그램 책임자로 15년 동안 근무한 경험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오송이나 송도 같은 한국의 바이오허브에서 여러 과학자 교육프로그램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국가적으로도 도움될 수 있게 임상 연구능력이 있는 인력을 배출하는데 일조했으면 합니다."


☞김선진 회장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비뇨기과 박사를 받은 후 1999년부터 미국 텍사스대학 MD 앤더슨 암센터 교수로 19년 동안 연구 활동을 했다. 2017년 3월 국내에 들어와 한미약품 R&D 총괄 부사장을 역임했으며 2018년 10월 플랫바이오를 창업했다. 올해 3월부터는 코오롱생명과학의 미국 현지법인인 코오롱티슈진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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