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티슈진 재도약 날갯짓…美 임상 투약 본격화에 ‘인보사’ 기사회생

미국 제약사 머크(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는 2020년 한 해 동안 143억8000만달러(약 17조763억원)의 매출을 올린 슈퍼 블록버스터다.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아달리무맙)’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렸다. 머크의 역사는 키트루다 출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기업 운명을 바꿔놨다. 처음부터 키트루다가 머크의 희망으로 여겨졌던 것은 아니다. 오르가논이라는 작은 바이오텍에서 처음 개발된 키트루다는 몇 차례 M&A(인수합병)를 거치면서 머크의 품에 안겼지만, 주인이 바뀌는 동안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초기 단계 후보물질에 불과했다. 머크가 키트루다를 헐값에 넘기기 직전, 비슷한 기전이었던 경쟁사의 옵디보(니볼루맙)가 눈에 띄는 임상 데이터를 발표하면서 극적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 과정은 마치 위대한 사업가의 성공 스토리와 닮아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더없이 달콤한 것 같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역경과 고난으로 가득하다. ‘처음’이라는 무게도 견뎌야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만큼 후발 주자는 경험하지 않아도 될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인보사(TG-C)’가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인보사는 코오롱티슈진이 개발한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다. 출시 첫해 블록버스터 등극 신약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곧이어 터진 성분 논란으로 국내 품목 허가 취소, 미국 임상 중단 등의 위기를 겪었다. 모두가 끝을 얘기할 때 인보사는 다시 도전을 시작했다. 임상 중단 1년 만인 2020년 4월 미국 FDA(식품의약국) 투약 재개 결정에 이어 최근 본격적으로 투약을 시작하면서 위기 속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코오롱티슈진의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가 미국 임상 3상 투약을 재개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사진은 미국 FDA(식품의약국) 전경. (로이터) ▶인보사, 미국 임상 투약 본격화 ▷블록버스터 신약 불씨 되살릴까 코오롱티슈진은 2021년 12월 27일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의 소스 헬스케어 병원에서 무릎 골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인보사 투약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미국 FDA가 투약 재개 결정을 내린 지 1년 8개월여 만이다. 이번 임상 투약을 시작으로 코오롱티슈진은 2023년까지 미국 80개 임상 기관에서 1009명의 환자에게 투약을 진행한다. 기존에 투약을 완료한 11명을 포함해 임상 인원만 1020명에 달하는 대규모 임상이다. 코오롱티슈진이 19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선보인 인보사는 출시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2017년 7월 식약처로부터 국내 시판 허가를 받고 그해 12월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갔다. 세포유전자 치료제로는 국내 최초였다. 국내 출시되자마자 10개월 만에 누적 투여 건수 2200건을 돌파하며 블록버스터 신약 반열에 올라섰다. 홍콩, 마카오, 몽골 등 해외 판매도 빠르게 늘면서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탄생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축포를 너무 빨리 쏘아 올린 것일까. 곧이어 위기가 찾아왔다. 인보사의 주성분 중 하나가 식약처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에 기재된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유래세포로 드러나면서 2019년 품목 허가가 취소됐다. 환희는 짧았고, 추락은 빨랐다. 식약처 형사 고발과 환자들의 줄소송이 이어지고, 코오롱티슈진은 거래 정지 결정이 내려졌다. 기대가 실망과 분노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벼랑 끝에 선 인보사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활로를 찾았다. 신약 임상에 있어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고 까다로운 규제를 가진 미국 FDA가 임상 재개 결정을 내리면서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은 것. 2019년 4월 임상 재개 결정 이후 코로나19로 지체되던 임상 3상이 본격적으로 투약을 시작하면서 인보사는 다시 한 번 출발점에 섰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인보사가 사실상 퇴출된 것과 달리 미국 FDA는 인보사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자국 시장의 문을 열어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美 FDA가 안전성 인정 ▷적응증 확대 도전 박차 이번 임상 재개로 인보사 논란은 새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주목할 지점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안전성 이슈다. 미국 FDA는 임상 재개 결정과 함께 문제의 발단이 됐던 형질전환 신장유래세포를 통한 임상을 지정했다. 국내에서는 종양 유발 가능성 등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안정성 측면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미 FDA의 판단인 것으로 풀이된다. 코오롱 측은 이와 관련해 “미 FDA가 코오롱티슈진이 기존에 제출한 임상시험 데이터의 유효성을 인정한 것”이라며 “이를 기초로 형질전환된 신장유래세포(인보사2액)를 사용해도 좋다고 인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인보사가 그동안 목표로 삼았던 ‘근본적 치료제(DMOAD·Disease-modifying Osteoarthritis Drug)’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관건이다. DMOAD는 통증 조절과 기능 개선을 넘어 관절 구조의 개선 효과까지 얻을 수 있는 치료제를 의미한다. 코오롱티슈진은 인보사가 DMOAD로 승인받을 수 있도록 임상을 디자인했다. 전 세계적으로 DMOAD로 인정받은 치료제는 아직 없다. 골관절염 시장은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신약의 파급력이 큰 분야로 꼽힌다. 적응증 확대도 눈여겨볼 만하다. 코오롱티슈진은 무릎뿐 아니라 다른 관절 부위로 인보사의 치료 범위를 넓히려 하고 있다. 이에 최근 골반과 다리를 이어주는 관절인 고관절에서 골관절염을 앓고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2상 시험도 미 FDA 승인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인보사는 임상시험계획서(IND)와 임상 1상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임상 2상으로 진입했다. 기존 무릎 골관절염 임상에서 검증된 인보사의 안전성을 인정한 결과로 풀이된다. ▶티슈진 거래 재개 기대감 ▷코오롱생명과학 주가 꿈틀 증권가도 인보사의 미국 임상 3상 투약 재개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20년 5월부터 거래 정지에 들어간 코오롱티슈진이 상장폐지를 피하기 위해서는 인보사의 미국 임상 3상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이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2021년 8월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로부터 개선 기간 1년을 부여받아 상폐 위기를 모면한 코오롱티슈진은 2022년 2월 또 한 번의 상폐 심의가 예정돼 있다. 이와 관련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코오롱티슈진이 미국 임상 3상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가 쟁점이다. 인보사의 미국 임상이 상장에 큰 역할을 했고, 임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상장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개선 기간을 부여한 것도 미 FDA가 임상 재개를 결정했기 때문인데, 상장 유지를 위해서는 회사 측이 적극적으로 임상 3상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인보사 투약 재개로 코오롱티슈진의 거래 재개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다. 임상 자금도 확보한 상태다. 2021년 12월 초 코오롱티슈진은 총 354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2017년 기업공개를 통해 2025억원을 조달한 이후 처음이다. 최대주주 코오롱이 291억원을 투입하고, 2대 주주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도 사재를 털어 64억원을 내놨다. 오병용 한양증권 애널리스트는 “힘든 시기를 지나고, 인보사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 미국인들이 인보사를 다시 투약하기 시작한다면 코오롱티슈진의 부활은 물론 코오롱 바이오 계열사에 대한 시장의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주가에는 이미 인보사의 임상 재개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류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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